처음 나와 봤다. 군중심리와 냄비근성이 또다시 폭발한건가. 일 년밖에 떠나있지 않았으면서도 그새 한국인 정서에 반감이 내 머릿속에 드리워져 있었다. 이 작은 나라 사람들이 무슨 자존심은 그리 센지, 애국심에 호소하면 꿈벅 죽는 그런 민족 아닌가. 여자는 무조건 예쁘고 빼빼 말라야 한다는 인식하며 국민가방이 루이비통이라는 현실이 마냥 싫었다. 그런저런 이유로 겸사겸사 떠난 파리로의 유학길이었다. 그 곳에서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의 피를 발휘하여 매일같이 한국 뉴스 포털사이트를 숱하게 드나들었다. 그럼에도, 내 눈엔 자기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100일도 안되어서 갈아 치우자는 국민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이해는, 바로 그 곳, 그 시각,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이루어졌다.
이명박 정부가 가지지 못한 몇 가지 키워드가 있으니, 요즘 특히 화두가 되는 것은 바로 정체성과 소통의 문제이다. 머슴처럼 일찍부터 일어나 국민을 섬기겠다는 정부는, 하룻밤 사이에 위대한 성을 쌓아버렸다. 시민들의 조롱거리가 되어버린 그 성은, 위험천만한 그리스로 발려 은근한 위협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 오면 제 한 몸 불살라 버릴 것만 같은, 멀리서만 보아도 화마를 등에 지고 있는 상이었다. 내 생애, 이토록 많은 컨테이너 박스를 본 것은, 22년 만에 가히 처음이었다 할 수 있겠다. 한 시민의 말마따나, 부산항에 있어야 할 분들이 왜 도심 한복판에 서있느냐는 것이었다. 민족의 정기가 통한다는 광화문 앞길에 용접과 쇠심을 박은 것도 모자라 모래주머니까지 채우셨다니, 할 말은 다 한 듯 했다.
무엇보다도 나를 슬프게 한 것은, 이른바 ‘명박산성’ 벽면에 붉은 글씨로 MB를 끄적이는, 기껏해야 10살도 안되어 보이는 어린아이들의 낙서였다. 이명박 캐리커쳐 위에 섬뜩한 붉은 선을 그어대는 그네들은 무엇을 알고 저리하는 것일까.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표정에서, 현실의 쓰디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게 참 마음이 아팠다. 미성년자를 벗어난 지 갓 삼년뿐이 되지 않았지만, 나는 벌써 사회적인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토록 막혀버린 벽에게 낙서뿐이 허용하지 못하는 정부가 미웠고, 스스로 끝없이 슬퍼져버렸다.
아침 신문에는 부산항에서 옴짝달싹도 못하는 몇 십, 아니 몇 백 개의 컨테이너 박스들을 보았다. 화물 연대의 파업으로 그들 또한 제자리에 우뚝 서버린 것이다. 비록 용접을 당한 것도, 쇠심을 박힌 것도 아니지만, 그 육중한 몸을 옮겨줄 누군가가 없어서 그들은 제 할일도 못하고 그대로 멈춰있다. 이들을 풀어줄 열쇠는 다름 아닌 정부가 가지고 있다. 바느질을 할 때 홈질이 있고, 박음질이 있지 않은가. 지금 정부가 하는 일은 기껏 해야 느슨한 홈질일 뿐이다, 툭 하면 우두둑 뜯어져 내릴 것만 같은. 그들의 박음질은 언제쯤 될까.
컨테이너 박스에게 물었다. 네 역할은 무엇이냐고, 너는 무엇이냐고.
“글쎄요, 세상에 나서 정체성을 찾는 게 그리도 쉬운 일이던가요.”
그들이 속삭여 왔다. 나도, 정부도 모르겠는 ‘정체성’의 의미를 들먹여가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