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면에서 첫인상과 '오만과편견'의 연상작용은 참 흥미로운게 아닐수 없었다. 사람들은 줄곧 첫인상으로 편견을 갖게되지않나. 그게 오만이었다는걸 깨닫는데까진 어느정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말이다. 내가 꽤나 좋아하던 문학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오만'을 깨닫지도 못하고 그저 소설 속 로맨스에만 퐁당 빠져있던 느낌이랄까.
제목과는 조금 멀어지는 것 같지만, 사람의 인상이란 무얼까. 지극히 주관적이면서 객관적이라고 우겨댈 수 있는 '인상'이라는 것 말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좋은인상'에 대해서 호불호가 가려지는데 그 또한 얼마나 바보같은 짓인지 회의가 드는 요즘이다. 사람 인상과 분위기가 결국 성격을 반영할 수 밖에 없다고 줄곧 믿어왔던 그간의 편견에 한 타 얻어맞은 느낌이다. '사람볼 줄 안다'고 자신있게 밀어왔던 내 눈과 세치 혀가 세상에서 가장 바보같은 물건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그렇게 '인상'에 대한 갈림은 항상 벽으로 작용했다. 딱 봐서 느낌이 좋지 않다던가, 분위기가 별로라던가, 인상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벌써 안면근육이 무겁게 당겨왔다. 웃어도 페이크같은 느낌이고 머릿속은 복잡해져만 갔다. 그래서 포커페이스에 강하다, 약하다, 라는 표현이 나오는가보다. 누구나 다 겪는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여기에 한번 크게 갈등하기 시작하면 열등감의 나락으로 정신없이 빠져들기 일쑤이다. 소위 스스로 까칠까칠해지는 것이다.
문제는 그 벽을 넘어서는 사람들에 대한 한없는 믿음이다. 아니, 나 자신의 선택에 대한 믿음이겠다. 그 누군가를 택했다는 데에 대한, 선택에의 믿음이 강한것이리라. 그리고 그 믿음이 깨어지면 그렇게도 상처가 컸더랬다. 기대했던 것이다, 믿음에 대한 기대. 그리고 기대에서 우러나온 욕심. 우습게도 이 욕심은 자꾸만 편견을 만들었고, 그 편견속에서 나는 한없이 오만해져갔나보다.
오만의 끝에 서서, 그것이 더할나위 없이 커져버린 편견이었음을 깨달았을땐, 이미 스스로 상처를 감당하기 힘들어져버린 상황에 봉착해있을 즈음이었다. 배신감이라는 단어는 잔인하기 짝이없어서 쓰기에도 좋지 않은 단어이니 사용하지 않는다. 자존심이 걸린 단어이기도 하니 일단 '편견의 깨어짐'이라는 어구로 일축해본다.
그렇게 겪고도 또 반복이다. 오만했던 것을 반성해본다. 하나의 소소할 수 있는 일이 또 다른 인상을 자아냈다는 점도 꽤나 큰 오만함인건 잘 알고있다. 앎과 실행이 동등할만치 현자는 되지 못해서 나는 한껏 좁아져봤다. 편견에 휩싸여버리기 전에 잊는게 좋겠다고 한껏 오만해져본다. false pride에 싸여버릴듯한 pride를 찾는게 더 좋겠다고 한껏 외쳐본다 하지만, 아직은 소리없는 아우성에 불과하는가보다. 그만큼, 허물어짐의 맛은 구역질날만치 쓰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