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다가'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08/03/10 파리의 쌍무지개
  2. 2008/03/10 영화 PARIS
  3. 2008/03/05 터키의 천재피아니스트
  4. 2008/03/03 샤이요궁 위에서
  5. 2008/03/03 Mer du japon
  6. 2008/02/16 런던에서 만난 중국파워
  7. 2008/02/04 로뎅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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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커니 방에 앉아있던중
후두둑 빗소리에 문득 창밖을 바라봤는데
맙소사. 너무나도 선명하게
빨주노초파남보 그색깔 그빛깔 그대로
무지개가 둥글게 수놓여있는게 아닌가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두개로.

요즘 한창 나름 슬럼프라고 생각하고있었는데
기분이 한결 나아진 느낌이랄까
새로운 것에 계속 도전하고 있는 요즘
두개짜리 무지개로 응원을 보내줘서 고마워요 하느님 ^_^
(참고로 난 기독교 아니다..)

Posted by Lovely_Jae

영화 PARIS

걸어다니다가 2008/03/1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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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내리는 일요일 아침, 문득 잠에서 벌떡 깨어나 주섬주섬 옷을 입고 극장으로 향했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냥 발이 끌리는 대로 갔을 뿐이다.
개봉한지 꽤 된, 평점도 별로 안좋다는 이 영화가 보고싶었던건 단순히 PARIS라는 제목이 주는 낭만적이고 달콤한 이미지 때문이겠지. (조금 더 덧붙이자면 쥴리엣비노쉬에 막연한 환상도 있었고.)

영화는 엉뚱하게도 죽음과 파리를 이어내버린다.
그 촉매는 잔인한것도 두려운 것도 아니다. 약간의 눈물과 악이라곤 없는 선한 상의 인간들만 있을뿐이다. 영화 내용은 굳이 따져들어가지는 않겠다. 단지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말을 순수한 눈빛의 아이들에게 망설임 없이 던져낼 수 있을 정도로 죽음은 가깝고, 또 무거운 것이라는 기조 정도만 기억해두면 된다.

영화 파리는 파리 사람들을 보여준다. 제 직원에게는 냉담하리만큼 따끔하면서 이내 눈웃음과 봉쥬르-로 손님을 맞는 빵집 아줌마도 얄밉지가 않다. 시장에서 생선을 팔고 야채를 파는 이들은 우리 집 앞에서 마주할 수 있는 너무나도 익숙한 광경이다. 독신의 노교수도 차가운 미소를 지닌 여학생에게 꿈뻑 넘어가는 그곳이 바로 파리니 말이다.

파리 사람들의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길거리 아무곳에서나 진한 입맞춤을 날리고 지나가는 여자들에게 윙크를 날리며 물랑루즈의 화려함이 캉캉춤으로 대변되는 그런 곳이 파리일지라도. 가만보면 이네들도 우리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의 '진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에게도 사랑은 마냥 가벼운 것만이 아닌, 그네들의 인생에 절실하게 따뜻한, 그 무언가인 것이다.

수미상관마냥 다시 클로즈업 되는 노교수의 눈길이 느껴질때 즈음, 마냥 웃고 깔깔거리던 사람들은 숙연하게 '파리지엥'을 받아들인다. 마냥 외롭지만은 않은, 도도하지만 따뜻한 그런 파리지엥을 말이다.
영화는 파리를 세단어로 묘사한다. Luxe, Calme, Volupte. 휘황찬란함과 차분함, 그리고 쾌락이 공존하는 도시. 똑같이 노란 우비를 입고 공원을 내걷는 나이든 관광객들을 바라보는 렌즈 조차도 차분하고 유쾌한 곳이 바로 파리니 말이다. '죽음' 조차도 아름답게 뿌려질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몽파르나스 타워 위에서 재를 뿌리는 그네의 마음은 또 어떠했을까. 그 입가의 미소에서 화려한 파리를 떠올렸다면 나는 정녕 파리에 너무도 환상을 가지고 있다는 말일까.

파리에 살면서, 서울 20년 삶에서는 본적도 없는, 사람이 죽은 혹은 죽어가는 모습을 두번이나 보았다. 영화 속 여학생은 남자친구의 등을 부여잡고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 현장의 죽은 여인을 보고 "미치겠다"를 외친다. (우리말로는 '어떡해-'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어투는 '미치겠다'였다.) 그래, 미치겠다. 사람이 죽어가는 걸 보고도 미치지 않겠다 생각하면 그만큼 냉정한 사람이 더 있을까. 미치겠다고 선뜻 뱉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 파리지엥이고 또 이 영화의 사람들이었다. 쓸쓸한 죽음도 또 다른 시선으로 따뜻한 죽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파리스러운 영화고, 파리에 살고있어서 기뻤다.
밖에 나왔을땐, 들어가기 전보다 더 추적추적 비가 내려댔지만 말이다.

Posted by Lovely_J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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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비오는 샹젤리제.
초대를 받아 가게된 터키의 천재피아니스트 Fazil say의 콘서트.

4살때부터 친 피아노는 그의 양 어깨를 굽게했으며
그의 손끝에서 뿜어져나온 강하고도 약한 피아노의 선율은
그의 양 뺨에 뜨거운 눈물을 흘러내리게 했다.

온몸으로 '너무 느끼면서 하신다' 싶을정도의 그의 연주는
일종의 '터키스러움'과 그의 인생이야기를 동시에 들려주고 있었다.
굽은 어깨 앞으로 빼죽히 나와버린 그의 목은
환호하는 관객 앞에 끝없이 고개숙였으며
손끝마다 그가 내뱉었던 음악들은
지금도 내 귓가를 아른거리고 있다.




* CD 두장 선물로 받았다. 잇힝.

Posted by Lovely_J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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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프와 에펠탑으로 대표되는 파리


아주 오랜만에 설탕뿌린 크레프 한조각.
제일 좋아하는 에펠탑이라고 노래를 불렀으면서
막상 에펠탑 사진찍기 제일 좋다는 샤이요궁은 처음 올라감.
흐린 파리하늘은 여기저기 피는 꽃들을 더욱 두드러지게 보여주고.
방학을 맞아 사람들은, 붐비는 속에서 제각기 웃음을 찾는다.
누구에게도 군중속의 고독을 안기지 않겠다느니마냥,
거리의 음악가들은 제각기 자기의 활을 놀리기 바쁘다.


바로 이곳이 내가 사랑하는 도시, 파리이다.

Posted by Lovely_Jae

Mer du japon

걸어다니다가 2008/03/03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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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ee Guimet(기메박물관) 일본관에 나와있는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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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ee du quai branly 아시아관에 나와있는 지도


어제 오늘 어쩌다보니 계속 아시아 문화와 관련된 박물관을 많이 가게 되었더랬다.
2006년 개관한 브랜리박물관에서부터(에펠탑 옆쪽 위치),
유럽최고의 아시아 문화 박물관으로 손꼽히는 기메뮤지엄에 이르기까지.
정말 최고는 최고구나 싶을 정도로 수많은 자료들이 박물관을 꽉꽉 채우고 있었다.

기메뮤지엄의 경우 한국관도 물론 있었는데,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빈약하나마 그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고 있었다.
뭐랄까, 한국미술은 붉은 빛깔이 다른 두 나라에 비해 더 따뜻한 느낌이랄까.
내가 한국인이니까, 한국사람만 느낄 수 있는 다름일지도 모르겠다만.

아무튼 오늘 기메뮤지엄에서 나는 혼자 바들바들 또 흥분을 해버렸더랬다.
이유인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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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색이 당나라 8세기, 옅은녹색이 한나라 1세기 당시 영토확장선


바로 이 지도 때문이었는데, (기메미술관 중국관에 설치된)
잘보면, 한반도 꼭다리, 즉 내가 알기론 '고구려'인 곳까지 저 빨간줄이 들어와있잖아.
순간적으로 '뭐야!! 동북공정이라더니 정말 고구려를 자기네 역사로 편입해버린게냐!!!' 라며
광분에 광분을 거듭하고 증거자료로 남길 생각으로다가 왕창 사진을 찍어서 집으로 가져왔는데
인터넷 검색결과, 8세기는 통일신라시대로 고구려는 이미 멸망했고 발해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그당시의 지도인것으로 대충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뭐 아무튼, 혹시라도 이것들이 손을 쓴건가- 하는 생각에 정말 놀랐었더랬다.
순간 '어륀지'로 한글맞춤법을 바꿔야한다는 인수위원장의 철없는 발언과 MB 대통령씨의 '-읍니다'
오타의 연속(오타는 무슨), 등등의 어처구니 없는 한국 현실들이 떠오르면서 이거 대통령한테 정신차리시라고 편지써야하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더랬다. 일단 문화원부터 연락하고.

한가지 아쉬웠던건, 우리의 장하디 장한 고구려가 영토확장을 했던것 따위는 나와있지도 않고
위 지도에서도, 왜 한국영토까지 다 중국에 먹힌것처럼 표시가 되어있는건지
(저기 저 국경선은 현재 우리나라와 중국의 국경선을 뜻하는 것이라 이거다. 당시것이 아니라.)
이러니 외국인 친구들한테 내가 듣는다는 소리가,
'너네 나라도 중국어로 말하니?' 라는 말들이니.(참고로 본인의 학교는 유럽에서 꽤나 잘나가는 학교, 학생들 일명 프랑스의 '엘리트'라고 불리는 이들임.)
그만치 중국의 속국이었던 것 마냥 여겨지고 있는것이 나와본 결과 알게 된 현실이더랬다. 잔인하기 짝이없는.

한가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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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요나라때를 표기해둔 지도


이 지도를 보아하니
우리나라가 GAOLI 라고 되어있는게 아닌가. (물론 중국관에 나와있던 참고지도이다.)
가오리는 또 뭔가 하고 집에와서 네박사에게 문의해보니, 아하- 중국 병음으로 고려를 가오리로 읽는단다
그래도 Corea라는 당시의 이름이 있는데.. 좀 아쉬운 느낌이었달까.
물론 우리나라관쪽으로 가면 참고지도에 Corea라고 나와있기는 하다.
아마 중국관이다보니 중국 지도를 보고 써서 이렇게 이름이 다른가보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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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의 단아한(?)모습


난 결코 애국자도, 역사에 박식한 이도 아닌데,
외국에 나와 살다보니까, 나도 모르게 '정체성'이라는 걸 자꾸만 중시하게 되는것 같다.
내 정체성. '한국인'이라는 국가에 귀속된 정체성일지언정, 내 얼굴과 내가 쓰는 말, 내 모양새 자체가 한국인이니까. 그래서 난 내 정체성을 더 지키고 싶어졌고, 자연스럽게 더 강조하게 되었다.
니하오,곤니찌와라는 인사를 듣고나면 한없이 분했고,한국은 중국어를 쓰냐는 말을들을때면 치가떨렸다.
그것이 바로, 내가 6개월간 파리에서 살면서 가지게된 또하나의 습성이 아닐까.


그건 그렇고,
맨 윗 사진. 일본해라고 표기되어 있는것들.
우리나라 문화원은 관심이 있긴 한걸까.
대한항공이 루브르에 한국어안내 설치하는것도 좋지만
일본해라고 쓰여있는 수많은 안내지도들부터 동해 또는 Mer de l'est로 바꿔나가는
그런 작은 움직임들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해본다.


+덧글
한국관에 있는 김홍도 그림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더라.
프랑스에 있는 우리 문화재들이 강탈당하고 수탈당한 것들이긴 하지만..
사실 여기 있는 다른나라 문화재들에 비해서 우리나라것은 유독 적었다.
그만큼 타국민들이 우리문화를 접하기가 무작정 쉽지만은 않다는거지.
게다가 일반 관광객들이 봤을때, 일본, 중국과 비슷한 느낌이면서 게다가 수까지 적으면
이건 마치 '그냥 중간에 껴있는' 혹은 '특색없이 마냥 비슷한', 나아가 '중국문화권'으로 점철되는
그런 문화로 인식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물론 강탈, 수탈당한게 잘되었다는 얘긴 아니지만, 우리문화들이 다른나라에서 문화재로서 세계에 알려지고 있다는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글쎄, 외규장각 도서라면 좀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Posted by Lovely_J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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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마주친 중국파워



때는 2008년 2월, 한국 날짜로 구정연휴 마지막날.
저는 분명히 런던에 있었던 것 같은데 왜 온통 거리는 중국식 붉은 등과 CHINA라는 글자들 뿐일까요.

중국의 새해축제가 아주 거창하게 런던 한복판에서 열렸습니다.
내셔널갤러리를 끼고 트라팔가 광장까지 이어지는, 런던에서 가장 붐빈다는 바로 그 지역에서 말이죠.
몇시간동안 교통을 통제하고 위 사진처럼 퍼레이드를 펼치기도 했고
하루종일 런던거리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중국노래로 심지어는 소란스런 느낌까지 들고.
이건 뭐랄까, 파리에 있어도 중국어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서는 기분이랄까요.

중국은 그만큼 크고 있지만
동시에 그들이 지닌 한계도 낱낱이 비춰지는 느낌이에요. (이를테면 국가적인 이미지의 한계 등등)
올림픽 이후, 중국의 경제규모는 정말이지 더욱 확장되겠죠. 지금보다두요.
얼마전 강연에서 토니블레어를 포함한 유럽 고위직 사람들이,
중국의 많은 인구와 엄청난 인재배출력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교육뿐이라고 시사했듯이 말이죠.
제가 보는 중국은, 그리고 중국 사람들은,
목표한 바가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성취해내는 이들이고,
말인즉 한다면 한다-는 정신력으로 무장했다는 거죠.
그리고 모든 핑계와 이유거리는 '우리는 인구가 많으니까'로 대체되는 그런 나라.

중국의 성장을 위기로 보아야할지, 혹은 또다른 기회로 봐야할지는
말그대로 한국의 정신력에 달린거겠죠.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먹고 또 어떻게 덤벼들지.
휴. 결론내리기 힘든 일이 인간사라고 했던가요. 아무튼 중국을 보며 크게 위기를 느끼는 요즘입니다.



Posted by Lovely_J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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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첫째주 일요일 미술관 무료개방의날"을 맞아
집에서부터 정확히 15분 걸어가면 있는 로댕미술관에 "처음으로" 갔다. (미술에 무지한인간)
날씨는 맑기 그지없고 (이건 정상적인 프랑스겨울날씨가 아니다 : 원래 = 비바람 꿀꿀 흐림의 연속)
하늘은 파랗고 그러나 방심하고 나간탓에 바람의 어택을 막을순없었다
하나 더 껴입으러 집에 들어오고싶었으나 7층을 다시 걸어올라갈 자신이...
그냥 걷기로..

유명한 '생각하는사람(le Penseur)' 부터 '깔레의 시민들(Bourgeois du Callais)', 지옥의 문 등등
로댕하면 떠올릴수있을만한 작품들은 당연히 다 있었으며
까미유끌로델의 작품들은 4월까지 스페인 특별전으로 외출나가셨답니다
반가운 빈센트반고흐님의 작품 몇점보였고
유명인사들의 얼굴 조각도 몇점(발자크라던지 보들레르라던지 등등 ; 불문과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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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penseur를 자세히보면말야
왼쪽 엄지발가락이 들려있는걸 볼수있거든
나로선 상당히 거슬리는 부분이었지만
가라데할때 기본준비동작에 엄지발가락운동이 있거든
혹시... 모델분도... 그래서 종아리에 근육에 바짝 힘이들어간건가....
여튼 오뎅님의 섬세한 근육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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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레의 시민들
여기서 내 눈에 뜨인건 다름아닌 열쇠
사실 깔레의 시민들 이야기를 잘 모르고 있었던지라.. 이게 무슨의미일까 하고 찍어왔는데
캄사한 구글님의 도움을 받자와 방금막 새로 배웠지요 (배움의 기쁨)
영국의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의 작은 도시인 깔레를 침공했을때 얘긴데
영국군이 전 도시를 포위하고, "만일 6명의 깔레시민이 깔레시의 열쇠를 들고나와 사형을 받는다면 나머지는 다 살려주겠다"고 조건을 걸었다네. 그때 용감한 깔레시민 여섯명이 이렇게 나가서 말그대로 숭고한 시민정신을 실현해낸것이죠. 바로 그 스토리가 여기 이 조각상에 들어있는거고.

아 하나더, 이 조각의 경우 특히 전부 나신상으로 조각을 한 후 옷을 입히는 형식으로 조각을 한거라네...그쪽으론 내가 또 무지하셔서 잘은 모르겠지만, 굉장히 획기적인 방법중 하나였다고 하네요.
덕분에 움직임이 더욱 잘 살아날 수 있었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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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문
그중에서 오른쪽 아래에 보면 바로 이 조각이 있지
후후 Amour, 피어나는 사랑의 느낌이 가득하지 않나.
사실 이 전체 , 지옥의 문 자체가 로뎅의 예술인생을 다 담은 작품이라고들 하던데
정말 그런게, 그의 작품들이 다 이 작품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거든,
맨 꼭대기 생각하는 사람부터 말야. 부분부분.
여튼 이부분은 단테의 '신곡'에서 한 장면을 따다가 조각해낸 부분이라는데
인터넷 찾아보니까 매치가 좀 안되긴 하지만 '입맞춤'이라는 조각과 연관성이 짙은듯
암튼 아담과 하와를 연상케하는 그런 조각이었지. 음. 뭐랄까 은근 진한느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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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름답다,
라는 작품. 이또한 지옥의 문에 붙어있다고
아래 보면 보들레르의 시 'Beaute(아름다움)' 한구절이 적혀있는데
사실상 그 시와 이 조각사이에는 크게 연관이 없다는 얘길 들었죠
이 조각을 할때가 한참 보들레르의 악의 꽃이 인기일때라는 이야기정도.
그냥, 나는 아름답다-는 타이틀이 너무 좋아서. 그래서 찍어왔지. 내손이 살짝비치네


일단 로댕.. 아 호뎅(이경숙여사의 뜻에 따라 영어뿐 아니라 불어도 불어식발음대로 쓰셔야지?)뮤제는, 조각보다 조각미남에 더 관심이 많은 나에게 또다른 아름다움을 깨쳐줬다. 진짜 조각의 아름다움.
아직 수련이 더 필요하긴 하지만말야.

Posted by Lovely_Jae